[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서하초등학교 신귀자 교장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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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학교를 살리면, 학교가 마을을 지킵니다."


지금은 사라진 서하면 운정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15년, 서하초등학교 공모제 교장이 되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작은 학교'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왔다. 새내기 교사일 때 지녔던 풋풋한 열정을 넘어, 이제는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지키는 어른으로 큰 역할을 해내고 있는 신귀자 교장. 서하초 교정의 오래된 벚나무처럼, 그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 우리 마음에 희망을 드리우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나에게 서하란?

도전이자 과제입니다.”


2022년 어느 봄날, 서하초등학교 전경

2022년 어느 봄날, 서하초등학교 전경


안의에서 서하 가는 길. 광풍루 앞 금천에서 화림동 계곡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물줄기며, 물가 곳곳 가장 수려한 자리를 골라 들어선 정자들이며, 또 그 앞에 너른 치마폭처럼 펼쳐진 바위들까지, 버스로 15분 남짓 이어지는 그 근사한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제아무리 풍광이 빼어나다 한들 사람의 기척이 없고 삶이 만져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명소와 맛집을 찍고 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몰라도, 정주할 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게 어쩐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들이 뿌리내릴 곳은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일 테니 말이다.


다행히 서하는 그런 공간이다. 풍경 사이사이로 여러 마을이 점처럼 박혀 있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선線으로 면面으로 확장되는 곳. 아침이면 밤톨처럼 반짝이는 머리를 까딱거리며 면 소재지 한가운데에 자리한 학교로 모여드는 곳. 해마다 폐교 위기에 처하는 이 작은 학교를 살리겠다고 주민 전체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곳. ‘덕분’에 일할 맛이 난다는 신귀자 교장을 만나러 서하초교에 찾아간 날, 바람 불고 간혹 빗방울마저 듣는 궂은 날씨에도 학교를 지키는 오래된 벚나무 여덟 그루는 이제 막 꽃망울을 환하게 터뜨리고 있었다.


사라진 운정초교,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곳


함양읍에서 나고 자란 신귀자 교장이 서하 지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40년 전 일이다. 교대를 졸업한 해인 1983년에 서하면 운정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은행마을에 있던 운정초는 일찍이 폐교되어 지금은 연수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150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소중한 배움터이자 놀이터였다고.1) 그곳에서 새내기 담임교사로 5학년 학생들과 어울리며 보낸 일 년은, 어느덧 교장이 되어 퇴임을 바라보는 그이에게 여전히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1)1983년 당시 서하면에는 운정초, 봉전초, 서하초가 있었고, 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평균 15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골 인구와 학생 수가 줄자 1면 1교 정책이 시행되었고, 운정초와 봉전초는 각각 1995년과 1999년에 폐교되었다. 



“발령받고 처음 학교에 갔을 때 동네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무슨 사고 치고 온 거 아니냐고.(웃음) 미혼의 젊은 여선생이 하필이면 왜 이런 시골 오지로 왔느냐는 거죠. 그만큼 그때는 여기가 아주 촌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저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설레기도 했고요. 내게도 학창시절에 만난 선생님 중에 특히 존경하고 좋아한 선생님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 삶에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컸지요.”

운정초로 첫 발령 받은 1983년 당시, 앳된 모습의 신귀자 선생.(사진 제공_신귀자) 

 운정초교 운동회 풍경. 앞에서 지도하는 이가 신귀자 교장이다.(사진 제공_신귀자)


열정과 의욕이 앞섰던 학기 초, 신귀자 선생은 ‘내가 주는 만큼 아이들이 받을 거’라 여기고 조금은 엄하게 학습 지도를 했다. 날마다 숙제를 내주고 점검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에게는 꾸중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반 학생 수가 35명이었는데 누구 하나 담임교사의 말에 토를 달거나 싫은 기색을 하는 아이가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옳게 해나가고 있다 믿었다. 변화가 생긴 건 3월 말부터 학교 연례행사인 ‘가정방문’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컸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형편이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직접 방문해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더라고요. 흙벽으로 된 집에서 바닥에 멍석 같은 거를 깔고 생활하지 않나, 전기도 없고 수도시설이나 화장실도 변변찮고. 그걸 보니까 마음이 아픈 건 둘째치고 숙제할 여건이 안 되는 애들한테 숙제 내주고 안 해왔다고 혼낸 게 너무나 미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침을 바꿨죠. 학습이든 생활 지도든 무조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 그렇게요.”


가정방문이 끝나고 나서 5학년 반에는 숙제가 사라졌다. 대신 신귀자 교사는 수업에 더 충실하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쪼개 수준별 맞춤 지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또 교과과목 못지않게 아이들의 ‘청결’을 중시한 그는, 볕 좋은 날이면 바깥으로 아이들을 불러내 일일이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주고 종이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이를 잡게 했다. 발갛게 터져서 진물이 흐르는 아이들의 손을 물에 불려 연한 돌로 문지른 후 안티푸라민과 바셀린도 듬뿍 발라주었다. 더도 말고 사흘만 그렇게 하면 손이 반드르르해졌다니, 아이들이 갑자기 고와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마음도 손등만큼 보드라워져서 어쩌면 더 많이 웃고 더 밝게 재잘대지는 않았을지.


운정초 아이들과 보낸 일 년은 마치 첫사랑처럼 “가슴이 저리고도 애틋한” 감정들로 일렁인 시간이었으나, 함양읍에서 출퇴근하기가 버거웠던 그는 이듬해 읍내 학교로 옮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군내 여러 학교를 거치며 평교사에서 교감으로, 교감에서 교장으로 차근차근 승진도 한다. 운정초 이후로 유독 서하면과 인연이 없던 그가 다시 돌아온 건 2015년 9월, 서하초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다. 새내기 교사로서 첫발을 디딘 곳이 서하였듯, 이번에도 서하는 그가 교장이 되고 나서 비전과 꿈을 펼치는 첫 근무지가 되었다.


‘작은 학교 살리기’로 서하에 돌아오다


“서하초에서 공모제 교장을 모집하길래 자원해서 심사를 거쳐 왔어요. 그때 서하초가 내건 모토가 ‘작은 학교 살리기’였는데 마음이 확 끌리더라고요. 공모제 교장은 내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어야 하는 거라서 부담이 있어요. 공약을 얼마나 잘 실현했는지 엄중한 평가도 받아야 하고. 하지만 교사생활 하면서 꿈꿔온 것들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번 꼭 해보고 싶었어요. 부담이 큰 만큼 지금보다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요. 내가 좀 욕심이 많답니다.(웃음)”


신귀자 교장이 공모제 교장으로 일한 시기는 2015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다. 이 기간에 그는 교육과정을 알차게 구성하는 데 가장 힘을 쏟았다. 현재 서하초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삶을 가꾸는 행복한 아름지기 서하 교육’이라는 비전은 ‘앎’과 ‘삶’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신 교장의 철학과 그를 뒷받침해온 전 교사의 연구 과정을 통해 세워진 것이다.


서하초는 2017년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됨으로써, 시골 작은 학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삶은 지식, 지성만 가지고서는 안 되잖아요. 인성도 필요하고 감성도 필요하죠. 그러니 이제 학교 교육도 인성, 지성, 감성이 통합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해요. 우리는 이를 아름다운 어린이(인성), 지혜로운 어린이(지성), 기품 있는 어린이(감성), 즉 ‘아름지기’라는 말로 정리해서 모든 교과과정을 이 얼개에 맞추어 재편성했어요. 그 결과 서하초가 2017년에 ‘100대 교육과정 선정 우수학교’로 뽑혔어요. 전국에서 15개 학교밖에 선정되지 않는데 거기에 전교생이 23명뿐인 작은 학교가 들어가니 다들 놀랐죠.”


그가 공모제 교장으로 일한 4년은 교과과정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을 중심에 놓고 부단히 길을 찾아 나간 시간이었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인정을 받은 만큼 성취감과 만족감도 따라왔다. 그러나 작은 학교 살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표라 할 수 있는 학생 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서하초가 우수학교로 뽑히고 전교생이 교육감 표창을 받아도 학생은 늘지 않더라는 것.


“함양 내 다른 학교에서 이리로 전학을 와야 하는데 그게 참 안 되더라고요. 교육 환경이 조금 어려운 분들, 일반 학교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그래도 통하지 않을까 해서 2018년까지는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아이를 우리 학교에 보내 달라, 그러면 아이 역량을 최대한 키워주겠다고 적극 홍보를 했어요. 특히 거리상 가까운 안의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대개가 안의 토착민이어서 그런지 자녀를 안의에서 키우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또 안의 쪽에서 보면 서하는 아주 촌인 거야.(웃음) 그런 촌으로 내 손주, 내 자녀 보낸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는 거죠.”


토박이 선주민들의 심리를 그제야 꿰뚫은 신귀자 교장은 2019년에 들어서면서 귀농 귀촌 가정의 자녀를 유입하기로 마음먹는다. 조금은 ‘다른’ 삶을 추구하기 위해 굳이 시골로 내려온 사람들이라면 고향이나 학연 지연에 좌지우지되기보다 학교의 역량과 교장의 가치관, 그리고 아이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길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을공동체나 마을학교가 활성화되면서 학교 행정이 그런 활동에 점점 개방되는 추세잖아요. 그런데 2, 3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어요. 그 때문에 안의로 귀농 귀촌해서 마을공동체 활동하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았죠. 아이들과 뭣 좀 하려 해도 학교가 체육관도 못 쓰게 하고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못 하게 한다고. 그래서 내가 생각했어요. 그분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설명회를 해야겠다! 우리는 체육관이고 뭐고 학교 전체를 개방할 테니까 이리로 오시라고.(웃음)”


학교를 시작으로 지역에 번지는 작은 변화들


2019년 8월에 임기를 마쳤으나 서하초에 남아 작은 학교 살리기라는 과제를 계속 이어가기로 마음먹은 신귀자 교장은, 그해 하반기에 함양군 귀농 귀촌인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열기로 하고 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폐교된 봉전초등학교에 들어선 다볕자연학교연수원 장원 대표와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큰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설명회를 군이 아닌 전국단위로 확장하면서 ‘판’이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그에 따라 설명회를 준비하는 주체도 서하초 교직원을 넘어서 군수와 교육장은 물론 서하초 총동문회, 지역 주민으로 확대되어 총 15명의 ‘학생모심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서하초 살리기의 진행 과정을 들려주는 신귀자 교장.


“2019년 11월 27일에 학생모심위원회가 첫 회의를 하면서 전국단위 설명회를 12월 19일에 학교 체육관에서 열기로 결정했어요. 도시에서 시골에 내려올 때 중요하게 보는 게 주거와 일자리, 학교 특색 프로그램이니까 분야별로 담당자를 정해 열심히 준비했죠. 이장님은 동네 빈집을 찾고 일자리는 군청 경제과와 귀농귀촌계 직원들이 안을 마련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설명회 일주일 전에 장원 위원장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서하초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이 각 신문 1면에 일제히 소개된 거예요. 그때부터 조희연 교육감, 이외수 작가 등 유명 인사들이 영상으로 격려사를 보내오고 임대주택 사업하는 LH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또 지역 기업체인 에디슨모터스가 지원하겠다 나서고… 덕분에 설명회는 성황리에 치렀어요. 외지에서 오신 열 가구 학부모들 포함해서 한 200명 정도 참여했죠. 모든 방송사에서 그걸 취재해서 내보내니까 그다음 날부터 문의와 신청이 쏟아지더라고요. 기한 내에 신청한 가구가 75가구나 됐어요. 준비된 빈집은 다섯 채밖에 안 됐는데.(웃음)”


이듬해인 2020년 초, 여러 기준과 조건을 고려해 심사한 결과 일곱 가구가 서하로 들어왔고 그들의 자녀 17명이 서하초 학생이 되었다. 병설유치원생까지 포함해 13명에 불과했던 인원이 32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더욱이 LH가 작은 학교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서하면에 임대주택이 들어서고 농어업협력재단을 통해 청년레지던스 플랫폼 ‘서하다움’이 생기는 등, 서하면에 연쇄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주민이 늘어나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려는 낯선 청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지역에 전에 없던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과 마을이 한마음으로 협력했기에 학교 살리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군 차원에서 나서준 것도 고맙고, 무엇보다 서하초 총동문회와 주민들이 많이 애써줬죠. 그때 서하 사는 웬만한 사람들은 5만 원부터 시작해 각자 상황에 맞게 발전기금을 거의 다 내서 약정한 1억 종잣돈을 모았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이제는 주민들이 학교가 뭘 어떻게 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봐요. 새로 들어온 이주민들의 말과 행동에도 민감해지고요. 당연히 여기저기서 싫은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게 무관심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요? 선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이곳 주민들이 학교에 관심을 안 가지면 폐교를 막을 수 없어요. 또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 소멸은 시간문제고요. 과거만 남고 미래는 사라지는 거지요.”


도전과 실험에는 대가가 따른다. 성과가 아무리 달콤해 보여도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더욱이 그 성과를 지속하고 안정화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차이를 다양성 안에 녹여내야 비로소 진정한 단맛을 향유할 수 있다 할까. 그러하기에 신귀자 교장에게 작은 학교 살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로 다가온다. 공모제 교장 임기 이후 연속으로 일한 지 3년이 돼가지만, 이제는 부담이 좀 덜한 다른 학교로 옮긴다 한들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을 테지만, 그이의 마음 한 조각이 여전히 서하초에 붙들려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으면 길이 보이죠”


“나는 처음부터 이주해 오는 분들에게도 그랬어요. 섣불리 결정하지 마시라고, 지역민과 함께 살아갈 자세가 되어 있는 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노력이 필요하죠. 그 노력은 다른 게 아니라 이 지역 마을공동체와 더불어 가려는 마음이에요. 도시에서 내려와 서하초 학부모로 사는 이유가 뭐겠어요. 아이 교육 때문이잖아요. 그러면 아이가 여기서 얼마나 만족하고 즐거워하는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해요. 그게 중심이 될 때 다른 잔잔한 불평들, 의료시설이나 문화 프로그램 등이 부족한 데서 오는 개인적인 불만들이 다독여지죠. 또 여기서 대대로 살아온 선주민들도 애초에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섰을 때의 그 심정, 학교와 아이들이 마을의 미래라는 점을 되새기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을과 어우러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서하초 교장실은 선주민이든 이주민이든, 학부모든 학생이든,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만남'과 '경청'의 공간이다.


이주민도, 그렇다고 서하면의 ‘찐’ 주민도 아니어서 객관적인 거리 두기가 가능한 신귀자 교장은, 작은 학교 살리기라는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사이 어느새 이주민과 선주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있다. 남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에 언제나 귀를 열어두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맞장구를 치거나 무조건 달래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나누어야 할 이야기의 중심은 ‘아이들’임을 끊임없이 일깨우려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들을 모시고자 했던 첫 마음을 잊지 말자고. 그럴 때라야 서로 단단하게 손잡고 나아갈 길이 계속해서 열릴 거라고.


“사람들에게 종종 말해요. 앞으로는 ‘때문에’ 대신 ‘덕분에’를 쓰자고. 누구 때문에, 뭐 때문에, 이런 말은 필연적으로 상황이나 남을 ‘탓’하는 것으로 이어지잖아요. 반대로 덕분에를 쓰면 서로에게 공을 돌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죠. 마을이든 학교든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런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학교 살리기도 결국은 수많은 당신들 덕분에, 아이들 덕분에, 마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귀자 교장 역시 이처럼 아름다운 ‘덕분에’ 목록에서 빠져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가 언젠가 다른 학교로 옮겨가든, 아니면 서하초를 끝으로 퇴직하든 그 사실은 변함없지 않을까? 이에 동의한다는 듯 비에 젖은 벚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아래 앉은 신 교장의 얼굴이 환하다. 어쩌면 그는 지금 이 순간, 얼마 안 있으면 시작될 벚꽃들의 향연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무 밑 놀이터에서 꽃비 맞으며 뛰어다닐 아이들을 떠올리고 있거나.


서하초 교정에 우뚝 선 벚나무들. 서하면 사람들은 학교가 이 나무처럼 오래오래 존재하기를, 그리하여 아이들이 그 속에서 맘껏 뛰어놀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서쪽 아랫말_사람_이야기

함양군 서쪽 아래에 자리한 서하면.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물이 아름답다고 하여 화림동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에는 오래도록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들, 삶의 다른 길을 찾아 걸어들어온 귀농 귀촌인들, 최근 이주해온 젊은 부부와 청년들도 있습니다. '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는 이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서하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서하다움'이란 큰 그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자 합니다. 


인터뷰 및 글_자야 jayams@naver.com

사진_채홍필 pathos189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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