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농촌유토피아 연구소 장원 대표 (봉전마을 거주)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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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전성기, 나는 폭풍처럼 산다 



일찍이 환경운동에 몸담으며 <녹색연합> 등의 단체에서 일했다. 이십여 년 전, 함양군 백전면에 <녹색대학>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함양 땅과 짧은 인연을 맺은 그는 2010년에 다시 서하면으로 들어와 옛 봉전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다볕자연연수원>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최근엔 농촌유토피아 프로젝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스스로 ‘제2의 전성기’라 퍼뜨리고 다니는 중이다. 육십 대의 나이에도 “나무처럼 일하고 벌레처럼 책을 읽고 폭풍처럼 살고 싶다”는 뜨거운 바람을 지닌 장원 씨를 그의 거처 다볕자연연수원에서 만나본다.


 

“나에게 서하란?

제2의 인생이 열린 곳이죠.”

 

 

서하면 봉전마을 들머리에 있는 다볕자연연수원 전경.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 세상이 스멀스멀 깨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찬물에 낯을 씻는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일정을 점검한다. 수첩에는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사람,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빼곡하다. 보기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질 만큼 많은 양의 일과이나, 그에게는 오히려 이것이 하루 치의 양식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 ‘서하초살리기’를 시작으로 최근 ‘농촌유토피아’ 프로젝트가 제 궤도에 오르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 장원(농촌유토피아 연구소 대표) 씨의 이야기다.

 

그는 본래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그 일이 가보지 않은 길로 자신을 데려다줄 때 더 환호하고 몰두한다. 혈기 왕성하던 젊은 시절에 일궈낸 <녹색연합>과 <녹색대학>이 그러했고, 현재 그가 ‘올인’ 중인 농촌유토피아 사업이 그러하다. 나무가 뿜어내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다볕자연연수원>에서 장원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심지어 “지금이 제2의 전성기”라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미 일선에서 은퇴했거나 물러날 시점을 고민할 나이에 다시 전성기라니. 무엇이 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지가 궁금하여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폐교든 작은학교든, 일단은 ‘살리고’ 봅니다

 

장원 대표와 함양의 인연은 얕지 않다. 2000년대 초반, 생태환경과 대안교육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대학이 백전면에 들어서면서 그는 함양 땅을 밟았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2010년, 그의 발길은 서하면 봉전마을에 이른다. 지역에 다시 돌아온 그를 맞아준 건 폐교한 지 한참 되어 더는 사람의 기척과 숨결을 느낄 수 없는 봉전초등학교였다.

 

“이철우 군수 때였죠. 그 밑에서 일하던 지인이 어느 날 연락을 했어요. 내려와서 일을 좀 맡아달라고. 폐교 하나를 위탁받아 운영하면 사업 지원을 해주겠다고요. 나야 새로운 일을 좋아하니까 안 올 이유가 없었지. 그런데 와서 뭐 좀 하려니까 군수가 구속된 거예요. 그다음 군수도 또 구속됐고. 상황이 꼬였다고 그만두기도 그렇잖아요? 이왕 내려온 거 여기저기서 지원받아 이만큼 정비를 한 거죠.”

 

리모델링 전, 봉전초등학교의 옛 모습. (사진제공_장원)


다볕자연연수원에는 이곳이 봉전초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장원 대표는 옛 초등학교를 단장하여 되살려낸 공간에 ‘생태’적 가치관과 ‘교육’에 대한 열의를 담아 이름을 <다볕자연학교>1)라 붙였다. 그러고는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태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한편으로는 폐교 위기에 처한 작은 학교를 살리고 이를 통해 쇠락해가는 농촌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구체화해나갔다.


1) 지금은 <다볕자연연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최근엔 공무원, 국가기관, 기업체 등의 연수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주로 한다.


 

“작은학교살리기는 학생보다 학부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부모가 와야 애들이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서하초살리기 할 때 주거와 일자리를 공약으로 내세운 겁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골에 온다 해도 애들 초등학교 다닐 때만 좀 있다가 다시 도시로 빠져나가는데, 그러면 무슨 소용입니까?”

 

주거와 일자리를 열쇳말로 하는 장원 대표의 아이디어는 서하초를 만나 ‘불씨’가 되었고, 신귀자 교장을 비롯한 서하초 교직원들의 노력과 지역 주민의 호응이 뒷받침되면서 ‘불꽃’으로 피어났다.2) 그 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농촌유토피아 사업에 참여하여 2020년 4월 함양 농촌유토피아 1호 시범사업으로 ‘서하초교 아이토피아 임대주택’ 착공식을 벌인 것은, 말하자면 타오르는 불꽃에 풀무질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안겨주었다.


2) 서하초의 작은학교살리기 과정은 신귀자 교장 인터뷰 참고(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첫 번째 글).


 

이처럼 전에 없던 방식과 내용으로 학교살리기를 추진해 서하면 가구 및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자 일명 ‘서하초형 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가 많아졌다. 거창, 남원, 남해 등지에서 11개 학교가 작은학교살리기를 벌였거나 현재 진행 중인 것은 그 결과라 할 만하다.

 

“사람들이 서하초를 작은학교살리기의 성공 사례로 꼽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급한 환자 응급처치해서 살린 거라 봐요.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한 달 안에 후다닥 했거든. 다른 지역의 경우는 최소한 1년의 준비 기간을 가집니다. 학교살리기 협의체를 구성하는 데서부터 공을 들이고 사전교육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운영하죠. 그렇게 해야 자체적으로 힘이 생겨서 일을 지속할 수가 있어요. ”

 

우수한 교과과정만이 아니라 주거 및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서하초’ 사례가 ‘작은학교살리기’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며 확산되는 추세다. (행사 사진은 모두 장원 씨가 제공함)

 

 지금은 응급처치 아닌 수술이 필요한 시기

 

작은학교를 살리고 농촌을 활성화하자면 응급처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 같은 “대도시가 마치 블랙홀처럼 지방을 빨아들여 하나는 대폭발로 흩어지고 다른 하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 상황에서, 그에 대항하는 ‘큰일’을 벌이는 데는 근본 수술을 감행할 인적자원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가 2020년에 ‘연구소’와 ‘대학’을 두 축으로 하는 농촌유토피아를 만든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연구소에서 각 대학 및 사회기관과 협력하여 다양한 농촌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고 대학을 통해 상상력과 실행력을 지닌 일꾼들을 키워낸다면, 그리고 이 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면 세상에 없던 이상향에 조금쯤은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믿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작은학교살리기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았지만 농촌유토피아 연구소와 대학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건 ‘농산어촌유토피아 시범마을’을 만드는 거예요. 시범마을이 뭐냐, 바로 농촌을 살릴 ‘핵심’ 마을이라고 보면 돼요. 솔직히 지금 농촌에 있는 인력과 역량만으로는 안 되잖아요. 그러니 도시의 젊은이들과 인적자원을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그 주변까지 잘 살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물론 아무나 들이면 안 되지. 시대정신에 맞는 마을이어야 하니까 탄소중립, 에너지자립, 기본소득,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재정 자립, 민주적인 주민자치 등의 원칙을 삶으로 살아낼 사람들을 선정해야죠.”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해남, 곡성, 고성(경남), 정읍시 네 곳의 지자체와 서울시교육청, 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 유토피아 연구소와 대학이 참여하여 농산어촌유토피아 시범마을 만들기 협약식을 치렀다. 장원 대표 말로는 올 한 해 동안 마을 청사진을 그려내고 내년에 우선 곡성과 고성에서 착공식을 할 예정이란다.

 

시범마을이라니, 얼핏 들으면 모든 시설과 자원이 갖춰진 근사한 마을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다는 시범마을은 단순하고 소박한 공간을 지향한다. 사람들도 일시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처음엔 열 명 스무 명으로 시작해 차차 백 명 천 명으로 늘 수도 있다. 그렇게 3년에 걸쳐 서서히 조금씩 완성해간다는 게 장원 대표의 구상이다.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농산어촌유토피아 시범마을 만들기 협약식에는 네 군데 지자체와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이 참여했다.  

 

“현재 네 군데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는데 그 주제랄까 정체성이 다 달라요. 곡성이 하려고 하는 건 청년유토피아예요. 고성은 탄소중립이 핵심이고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경작지를 보유한 해남은 식량자립 유토피아가 될 겁니다. 유토피아에 담긴 보편적인 원리와 가치는 담아내되 구체적인 건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서 가자는 거죠. 작은학교살리기 간담회나 강의에 나가면 늘 듣는 말이 서하초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건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요. 서하초에서 한 건 다 빼고 하는 게 진짜 벤치마킹이라고.(웃음) 유토피아도 마찬가지예요. 곡성에서 청년 중심으로 한다고 죄다 그렇게 할 필요 있나요?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되지.”

 

남이 안 하는 일, 안 가는 길에 ‘가능성’ 있어

 

차세대 농촌 리더를 키우기 위해 만든 유토피아대학에서도 장원 대표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이다. 이를 키워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는 학생들 각자에게 적합한 멘토를 붙이고 달마다 전국을 돌며 현장을 탐방한다. 어느 분야든 경지에 오른 사람을 보고 배우라는 의미다. 그러나 남이 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말라고, 앞서 길을 낸 사람의 뒤만 쫓아다니지는 말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유토피아대학이야말로 다른 대학이나 기관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거기서는 수업료를 받는 대신 오히려 학생들에게 매달 30만 원씩 지원한다. 대신 3년간은 농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 달마다 각자 주제를 정해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하고 2년 차가 되면 아이템이 뭐가 됐든 농업 관련 법인을 만들도록 추동한다. 자기만의 아이디어와 주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유토피아대학에 결합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차별성’ 때문인 듯.

  

유토피아대학 학생들은 달마다 전국 각지로 현장 학습을 떠나, 농촌을 살리면서 동시에 자아도 실현하는 사례들을 탐구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오륙십 대 사람들하고 어울리다 보면 정말 꼰대가 이런 거구나 느껴요. 우리는 더 가난하고 어려웠어, 고무신 신고 다녔어, 그런데 너희는 뭐가 힘들다고 그러니?(웃음) 이런 얘기나 하고 있으니까. 물론 우리나라 대다수 청년이 공무원과 대기업에 목숨 건다는 게 안타깝긴 하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사회구조의 문제잖아요. 또 학교에서 언제 창조적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을 받았어야지. 내가 곡성에 청년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공무원 안 하고 대기업 안 가도 농촌에서 얼마든지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다양한 삶의 길을 보여주는 게 기성세대의 역할 아니겠어요?”


장원 대표를 포함해 그 또래 세대는 다양한 삶의 길을 보고 배우며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녀들과 다음 세대에게 본인들이 걸어온 길만이 정답이라고 가르치고 때로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잘 알기에 장원 대표는 이제라도 청년들에게 다양한 길을 보여주고 열어주려 한다. 더욱이 꼰대가 되기에 그는 아직 삶이 흥미롭고 궁금한 게 참 많다.

 

은퇴 없는 삶, 나중엔 이야기꾼으로 살고 싶어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홀로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진 않아요. 전에 내가 써놓은 유서들을 보면 걷다가 죽고 싶다, 밭에서 일하다 죽고 싶다, 이런 문구가 꼭 나와요. 죽을 때까지 몸을 움직이겠다는 거지. 내 삶에는 은퇴가 없어요.”


은퇴 없는 삶을 위해서는 건강 관리가 필수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만 보를 걷고 한 달에 못 해도 열 번은 산에 간다. 가까운 필봉산과 백암산을 주로 찾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생각을 내려놓고 자연과 대화하며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걷기와 등산이 몸을 돌보는 방편이라면 정신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젊은 날 어설프게 떠들었던 것을 갚아나가는 마음으로, 무지몽매한 상태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겠다는 심정으로, 어떤 책이든 내용을 꼭꼭 씹어 소화한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절을 지나 세상 이치에 좀 밝아져서인지, 그에게는 독서가 점점 더 즐거워진다. 나이가 더 들면 그동안 수많은 책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빚어낸 이야기들을 세상 여기저기에 전하고 다니는 ‘스토리텔러’로 살고 싶기도 하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할 때가 첫 전성기였다면 농촌운동 하는 지금이 제2의 전성기예요. 남들한테 그렇게 떠들고 다닙니다.(웃음) 전보다 왕성하게 일하고 있거든요. 나를 찾는 이들도 더 많아졌고. 무엇보다 내 모든 앎과 경험이 현재 시점에서 통합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길을 찾아 나섰다면 지금은 길이 보여서 그냥 간다고 할까, 그런 차이가 있죠.”

 

스스로 ‘제2의 전성기’라 일컫는 최근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장원 씨.

 

2022년 첫날 아침, 그는 여느 때처럼 찬물에 낯을 씻고 책상 앞에 앉아 단정한 글씨체로 수첩에 이렇게 한 줄 적었다. “나무처럼 일을 하고 벌레처럼 책을 읽고 폭풍처럼 삶을 살다.” 나무처럼 일하고 벌레처럼 책 읽는 이가 이 세상에 한둘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폭풍처럼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흔들려도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한 그런 삶을 갈망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폭풍처럼 살겠다는 그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응원하고 격려해도 좋으리라. 훗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이야기가 그만큼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질 테니. 바람 같은 그 이야기에 누군가는 부푼 가슴을 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될 테니. 이런 상상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함양군 서쪽 아래에 자리한 서하면.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물이 아름답다고 하여 화림동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에는 오래도록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들, 삶의 다른 길을 찾아 걸어들어온 귀농 귀촌인들, 최근 이주해온 젊은 부부와 청년들도 있습니다. '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는 이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서하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서하다움'이란 큰 그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자 합니다.


인터뷰 및 글_자야 jayams@naver.com

사진_김한범 bombbu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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