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송계마을 주민 이라영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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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삶이 ‘재미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방이 푸른 물결로 넘실대는 거제도 가배리에서 유년을 보냈다. 도시에 나와 살면서도 그 시절의 기억을 늘 가슴에 품고 있던 그는,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면서 맞닥뜨린 ‘층간소음’의 지옥으로부터 해방되고자 시골행을 선택해 서하면 송계마을에 들어온다. 아이가 더 이상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되는 집, 함께 어울려 크고 작은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웃들이 있는 마을,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까지 문을 활짝 열어주는 학교.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도시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겁나 바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 가슴이 뛴다는 이라영 씨를 만나본다.

 

 

나에게 서하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에요.

 

 

그에게 유년은 푸른빛이다. 방문을 열면 바다가 보였고, 마당 밖을 걸어 나가면 발가락 사이로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귀를 맑게 헹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일어나고 잠들던 나날. 어린 라영은 엄마를 따라 우물가에 앉아 걸레 빠는 시늉을 했고, 해가 중천에 뜨면 깨복쟁이 친구들과 물 빠진 바다에 나가 돌멩이로 굴을 깨서 먹었다. 또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한 시간 남짓한 등굣길을 놀이터 삼아 개구리를 쫓아다니고, 뱀이 벗어놓은 허물을 관찰하고, 섬에 부는 바람처럼 달음박질도 치면서 학교에 다녔다.

 

“여섯 살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거제에서 살았어요. 앞에 바다가 있는 작은 집에서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절에 아이들과 논 기억이 너무 행복하고 좋은 거예요. 그래서인가 힘들거나 지칠 때면 아, 촌에 가고 싶다,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곤 했죠.”

 

부모 손에 이끌려 거제 가배리 촌을 떠나 정착한 대도시 창원. 거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해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도 ‘좋았던’ 시절의 기억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욱 선명하고 애틋해지기만 했다. ‘더 늦기 전에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그이는 인터넷을 통해 귀촌 정보를 하나둘 알아갔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현장 탐방도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함양군 서하면에 들어온 것이 2021년 2월이다. 주어진 경로를 이탈하여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이라영 씨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21년 2월부터 이라영 씨가 아이 둘과 살고 있는 서하면 송계마을의 ‘서하초교 아이토피아 임대주택’ 단지.

 

새로운 경로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

 

“제가 시골에서 행복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런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지만, 결정적으로는 도시에서 사는 거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층간소음이요. 신혼 때부터 아파트 9층에서 살았는데 아이 둘 생기면서는 극도로 조심하며 생활해야 했어요. 첫째는 알아서 까치발을 하니까 신경이 덜 쓰였는데 둘째는 많이 혼났죠. 그때마다 애는 울고 저는 저대로 속상하고. 그러다 코로나가 퍼지면서 아이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확 느니까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더라고요.”


아직 어린 자녀들이 제 본성을 억누르고 매사에 눈치 봐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부모가 감시자의 눈빛으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으며 뛰지 마라, 조용히 걸어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코로나는 그와 같은 상황을 악화시켰으나 역설적으로 시골행을 결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되었다. 라영 씨는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해 ‘작은학교’를 키워드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진짜’ 시골살이를 체험하고 맘껏 뛰놀 수 있으려면 읍보다는 면 단위 동네와 학교가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 보내기에 적당한 학교를 먼저 찾고 그걸 기준 삼아 집을 알아봤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학교와 집이 가까워야 한다는 거였죠. 또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널찍하여 아이들 놀기에 적당하면 좋겠다 싶었고요. 한 번은 남해에 있는 어느 학교를 보러 갔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집이 가깝다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8백 미터나 되더라고요.(웃음) 다른 데도 많이 둘러봤는데 집이 좋으면 학교가 멀어서 통학버스를 타야 한다든지, 또 학교와 집은 가까운데 너무 ‘까꾸막’1)한 데 있다든지,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1) ‘가풀막’의 경상도 방언. 몹시 비탈진 땅을 말한다.



서하면 송계마을의 한가로운 풍경. 귀촌지를 찾던 이라영 씨는 서하초가 가까운 데다 평지에 깨끗해 보이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2020년 여름, 라영 씨 부부의 걸음이 함양군 서하면에 이른다. 진작부터 점찍어 놓은 서하초는 물론이고 ‘드물게’ 평지인 동네 지형과 깨끗한 환경도 나무랄 데 없어 보였다. 그런데 빈집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해 가을에 한 번 더 왔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서하초 바로 앞에 LH 임대주택 단지가 들어선다는 희소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영 씨는 서류를 준비해 신청서를 넣었고, 그토록 바라던 ‘1층’ 입주자로 선정됐다.

 

“1층이 돼서 엄청 좋았죠. 그런데 글쎄 큰애가 여기서도 까치발로 걷는 거예요. 승호야 괜찮아, 여기서는 뛰어도 돼. 제가 이렇게 말해도 계속 발꿈치를 들더라고요. 하루는 학교 선생님이 애가 걷고 뛰는 모양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결국엔 병원에 깄어요. 의사가 하는 말이 하도 까치발을 많이 해서 아킬레스건 뒤가 짧아졌대요. 아이한테는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 와서 알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거기 계속 살았다면 몰랐을 거니까.”

 

여기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안 했을 일들

 

두 발을 온전히 땅에 딛어도 괜찮은 집, 언제든 자전거와 씽씽카를 끌고 나가 달려도 안전한 마을, 아이의 사소한 습관과 행동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바라봐주는 교사가 있는 학교. 이것만으로도 라영 씨는 자신의 선택으로 떠나온 여행이 이미 반쯤은 성공한 거라 믿고 있다. 작은학교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공급된 주택 단지다 보니 주변에 다자녀 가구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아이들은 어울릴 또래가 많아서 좋고, 부모들 또한 낯선 시골살이에 함께 적응해가며 때로는 공동의 활동도 모색할 수 있어 의지가 된다.

 

“시골에 살고 싶어도 자녀 또래 아이들이 없을까 봐 못 간다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구가 같이 들어오는 거라서 그런 걱정은 안 했어요. 또 도시에서는 주말마다 애들 데리고 어디 가는 게 일이고 고민이었는데 여기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애들 모아놓고 호스로 물 뿌리면 최고의 물놀이가 되는 거예요. 나무 그늘에 텐트 치고 앉으면 그게 곧 캠핑이고. 그냥 사는 데가 캠핑장이고 자연놀이터예요.(웃음)”

 

시골이 갖는 이런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누리기 위해 나서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작은학교살리기 프로젝트로 이주한 열네 가구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동네 뚜벅뚜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내가 사는 지역을 알고 서로 소통하자는 취지 아래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서하초 학생들이 사는 우전마을, 송계마을, 오현마을 등을 탐방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덕분에 참가자들은 내 친구, 우리 이웃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마을 길을 찾아가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학부모들이 기획하여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의 한 장면. (사진제공_이라영)

 

서하초 학생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임 ‘책맛’도 학부모들이 차근차근 일궈낸 활동 가운데 하나다. 함양교육지원청 학부모지원전문가의 제안과 지원으로 모임을 구성해 현재 6명의 학부모가 함께하는 책맛은, 매일 아침 학생들과 손잡고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록 1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이 주는 울림은 작지 않다. 책맛 대표인 라영 씨에 의하면 “아이들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정작 어른인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는 것. 더욱이 누구네 엄마, 누구네 집 아이로만 만나다가 공적인 자리에서 나와 너로 마주하는 경험은 어른과 아이가 맺을 수 있는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에 그 자체로 소중하다.

 

“책맛 모임은 작년 상반기에 준비과정을 거쳐 하반기부터 학교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학교라는 곳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한다는 게 마냥 놀랍고 신기했어요. 도시에서 학교는 학부모가 자주 가면 안 되는 곳이거든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여기 선생님들은 학교를 활짝 열어주니까, 또 학부모들이 일 벌이는 걸 고마워 해주시니까 좀 감동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라영 씨. 그는 서하초 학부모들의 모임 ‘책맛’ 대표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_이라영)

 

비록 대형마트도 없고 병원은 멀지만

 

그러면 이제 라영 씨는 도시가 전혀 그립지 않게 된 걸까. 흔히 시골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하는데 이주민으로서 체감하는 서하 인심은 과연 어떨까. 또 귀촌과 육아라는 공통분모가 있다지만 공동주택에서 마음 맞춰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인데.

 

“짜장면이나 특정 브랜드의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싶을 때 도시가 그립죠.(웃음) 제가 시골에 살러 간다고 했을 때 양쪽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다 반대했어요.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고. 그 말도 일리는 있어요. 애들이 감기만 걸려도 왕복 한 시간 걸리는 거창이나 함양읍까지 나가야 하니까. 시골이라서 물가가 더 싼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우리 애들 마음 편하게 키우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그거면 충분하다고 봐요. 남편이 아직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가끔 애들 데리고 가는데, 고층 아파트 보면 새장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요. 길도 너무 복잡하고. 그럴 때 서하 가길 잘했다 싶죠. 저는 여기 살면서 시골이 더 좋아지고 있어요.”


따지고 들자면 음식 배달 안 되고 대형마트 없고 병원이 먼 것만 문제는 아니다. 마을 어르신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면이 있다. 또 같은 이주민이라도 사람마다 성향과 생각과 처지가 다르니 그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현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만, 당장 몇 년 후 아이가 중학교 가야 할 시기가 되면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도 된다. 하지만 이런 건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생기는 일 아니겠냐고 라영 씨는 반문한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함께 의논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만 주민회의를 하고 보통은 단톡방으로 소통해요. 공동건물 1층에 있는 커뮤니티 공간에 모여서 같이 음식 만들어 먹으며 수다도 잘 떨고요. 사람은 자꾸 만나서 먹고 놀고 얘기해야 친해지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좋은 거 같아요. 선주민분들과도 당장 벽을 없애려 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게 먼저 아닐까 싶어요.”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귀촌도 그럴 것이다. 다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든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지는 방향으로 삶을 이끄는 ‘태도’는 있다. 라영 씨는 중요한 장점 하나를 확실히 취하고 다른 불편함은 가볍게 여기는 태도로 본인의 시골살이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귀촌 2년 차 선배가 도시 어딘가에서 시골 생활을 꿈꾸고 있을지 모를 후배에게 들려주는 가장 현명한 조언 아닐까.

 

“삶에 생긴 변화요? 가슴이 뛴다는 거죠”

 

“어느 날 아이들이 그래요. 엄마, 여긴 천국 같아. 지들 맘대로 놀기에 좋다는 거겠죠.(웃음) 그런데 가만 보면 여기 와서 가장 많이 변한 건 제 삶이고 가장 만족하는 사람도 저예요. 도시에서 주부로만 살다가 서하에 와서 바깥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어릴 때 꿈이 선생님 되는 거였는데 작년에 서상초에서 연계형 돌봄 봉사자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선생님 소리 들어봤어요. 곶감 깎는 알바 하다가 잘한다고 소문나서 다른 동네로 스카우트도 됐고.(웃음) 학교 가서 책 읽어주고 다른 학부모들과 활동하는 것도 참 보람되더라고요. 그냥 이 모든 게 저는 재밌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니까요?”

 

올해 들어 라영 씨는 면사무소에서 공공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주5일 근무하는 와중에 짬을 내어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열공’ 중이다. 간혹 도시 친구들이 전화해서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면 라영 씨는 농담조로 대답한다. “나 지금 겁나 바빠서 니들이랑 통화할 시간도 없거든!”

 

귀촌의 가장 큰 동기는 아이들이었지만, 현재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는 건 바로 자신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시에서는 더 바빴다. 아이 둘 등원 하원에 이런저런 학원 일정에 맞추어 차로 픽업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모자랐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사이 아이들이 좀 컸고 남편과 주말부부로 만나면서 신경을 덜 써도 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라영 씨는 무엇보다 시골 생활이 주는 물리적 정서적 여유로움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겠다, 그건 아니에요. 앞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요. 바람이 있다면 그저 다들 건강하게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재미있게 사는 거, 그거면 족해요. 며칠 전에는 남편한테 그랬어요. 당신이 도시에서 열심히 돈 벌어다 줘서 아이들과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사니 참 고맙다고.”

 

하루 24시간 인공 불빛으로 번쩍거리는 도시와 달리 시골의 밤은 깜깜하다. 저녁상 물리고 밖에 나와 슬렁슬렁 걷다 보면 어린 시절 엄마 등에 업혀서 잠투정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거제 섬의 까만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했다. 지금 서하에서 올려다보는 하늘도 그러하다. 칭얼대는 어린 라영을 토닥이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고 엄마가 읊조려주던 자장가를, 이제는 라영 씨가 저녁 산책을 함께 나온 제 아이들에게 불러주기 시작한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라영 씨가 그 시절의 하늘과 별과 노래를 잊지 못하듯, 아마 그의 아이들도 지금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라영 씨가 서하에서 펼쳐가는 여행길은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 그가 또 언제 경로를 이탈할지, 그리하여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지 알 수 없다 해도.

 

가족과의 행복한 한때. 서하면 송계마을에서 각자의 삶이 더 반짝반짝 빛나기를, 이라영 씨는 바라고 기대한다. (사진제공_이라영)



#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

함양군 서쪽 아래에 자리한 서하면.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물이 아름답다고 하여 화림동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에는 오래도록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들, 삶의 다른 길을 찾아 걸어들어온 귀농 귀촌인들, 최근 이주해온 젊은 부부와 청년들도 있습니다. '서쪽아랫말_사람_이야기'는 이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서하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서하다움'이란 큰 그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자 합니다.


인터뷰 및 글_자야 jayams@naver.com

사진_김한범 bombbu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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